제가 아는 상식선에서 전임 대통령을 가장 잘 예우한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십니다.

말로는 전임 대통령을 잘 예우하는 전통을 남기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정녕 그대가 믿는 신앙의 신에게 빨리 갈 수 있는
제단의 재물로서의 예우가 되어 버린 현실에

하늘아래 이 처럼 비통하고 애석함이 있을까요

말과 행동이 달라 진정성을 수시로 의심 받음에도 불구하고
거울속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지 못하니

아무쪼록 권좌에서 물러나시거든
부디 오늘을 회상하시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소서.

CBS 라디오 <시사자키 변상욱입니다>의 24일 오프닝 코멘트


온 나라가 충격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사자키, 주일 진행을 맡은 저는 시사평론가 김용민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의 평가, 이제부터 본격화되겠죠? 평가가 시작된다면,
이 기준!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서거한 지도자가 과연 재임 시절에 국민을 존엄하게 대했는지 그 여부를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 어떻게 대했는지 짚어봐야 합니다. 인터넷이나 매체에서 혹은 오프라인에서 자기를 비판했다고 언로를 차단하고 뒤를 캐고 혹은 규탄집회 자체를 봉쇄하고 물대포 쏘고 진압봉 휘두르고 붙잡아 가 겁박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다음은, 약자에 대해 배려했는지도 짚어봐야 합니다.
이를테면, 종합부동산세, 또 부동산 규제 다 없애고
사교육을 번창 하게 하는 방식으로 있는 사람 우대하고
없이 사는 사람 박대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권력을 본인을 위해 사용했는지 짚어봐야 합니다. 정적에 대해 공권력을 동원해 압박하고 망신주고 처벌했는지 심지어 정적이 세상을 떠났는데도 분향소마저 못 꾸리게 경찰력을 남용했는지 또 방송사 사장 같은 요직을 대선 때 고생했던 사람에게 선물로 하사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국민은, 자신을 존엄하게 대한 지도자가 설령 힘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똑같이 존엄하게 대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과연 존엄한 대우를 받을만한 그런 지도자였는지는
요 며칠 동안 나타날 추모 행렬 또 열기와 정비례할 것입니다.


한편 이런 의문도 듭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한 뒤에,
즉 힘이 없어지는 그 때에 과연 국민으로부터 존엄하게 예우 받는 지도자가 될지 말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3년 반 뒤 애청자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특히 "(이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은 내가 잘 모시겠다. 이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 만큼, 지금의 궁색한 내 처지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며 "내가 오해한 것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오해해도 크게 오해한 것 같습니다"며 이 대통령에 대한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님,
기록 사본은 돌려드리겠습니다.

사리를 가지고 다투어 보고 싶었습니다.
법리를 가지고 다투어 볼 여지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열람권을 보장 받기 위하여 협상이라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버티었습니다.

모두 나의 지시로 비롯된 일이니 설사 법적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내가 감당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퇴직한 비서관, 행정관 7-8명을 고발하겠다고 하는 마당이니 내가 어떻게 더 버티겠습니까?
내 지시를 따랐던, 힘없는 사람들이 어떤 고초를 당할지 알 수 없는 마당이니 더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모두 내가 지시해서 생겨난 일입니다. 나에게 책임을 묻되, 힘없는 실무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은 없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록은 국가기록원에 돌려 드리겠습니다.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 하나만큼은 전통을 확실히 세우겠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먼저 꺼낸 말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한 끝에 답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한 번도 아니고 만날 때마다, 전화할 때마다 거듭 다짐으로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자존심이 좀 상하기도 했으나 진심으로 받아들이면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은근히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저번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보도를 보고 비로소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때도 전직 대통령 문화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부속실장을 통해 연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처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어서 다시 전화를 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몇 차례를 미루고 미루고 하더니 결국 '담당 수석이 설명 드릴 것이다'라는 부속실장의 전갈만 받았습니다.
우리 쪽 수석비서관을 했던 사람이 담당 수석과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내가 처한 상황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전직 대통령은 내가 잘 모시겠다.
이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 만큼, 지금의 궁색한 내 처지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내가 오해한 것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오해해도 크게 오해한 것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가다듬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록은 돌려 드리겠습니다.
가지러 오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보내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통령기록관장과 상의할 일이나 그 사람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국가기록원장은 스스로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결정을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본 것도 보았다고 말하지 못하고, 해 놓은 말도 뒤집어 버립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상의 드리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기록을 보고 싶을 때마다 전직 대통령이 천리길을 달려 국가기록원으로 가야 합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정보화 시대에 맞는 열람의 방법입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전직 대통령 문화에 맞는 방법입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앞으로 그렇게 하실 것입니까?
적절한 서비스가 될 때까지 기록 사본을 내가 가지고 있으면 정말 큰일이 나는 것 맞습니까?

지금 대통령 기록관에는 서비스 준비가 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까?
언제 쯤 서비스가 될 것인지 한 번 확인해 보셨습니까?

내가 볼 수 있게 되어 있는 나의 국정 기록을 내가 보는 것이 왜 그렇게 못마땅한 것입니까?

공작에는 밝으나 정치를 모르는 참모들이 쓴 정치 소설은 전혀 근거 없는 공상소설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기록에 달려 있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우리 경제가 진짜 위기라는 글들은 읽고 계신지요? 참여정부 시절의 경제를 '파탄'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지금 이 위기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은 대통령의 참모들이 전직 대통령과 정치 게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두려운 마음으로 이 싸움에서 물러섭니다.

하느님께서 큰 지혜를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2008년 7월 16일
16대 대통령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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